어느 봄날,
저녁을 먹고 5살인 큰 딸과 함께 집 근처에 유명하다는 벚꽃길로 데이트를 갔다가 돌아가는 차 안에서 갑자기 아이가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.
“아빠! 아빠도 보여?”
아이는 잔뜩 신이 난 채 반짝반짝 빛나는 목소리로 말했다.
“아빠, 밤이 보여!" "뭐?"
짙은 밤이라 그런지 차선도 잘 보이지 않아 앞서가는 차의 발자국과 신호등 불빛에 몰입해 있던 나를 아이는 들뜬 목소리로 깨웠다.
밤이 보인다. 밤이 보인다니.
나는 핸들 가까이 머리를 푹 숙이고 차 앞 유리창 제일 위로 눈을 치올려 하늘을 바라 보았다.
그 곳에는 까만 밤하늘에 수 많은 벚꽃들이 흐드러져 있었다.
"그래, 정말 밤이 보이네. 정말 아름다운 새하얀 밤이야. 그렇지?" 벚꽃이라고 생각했다.
다섯 살 아이의 눈에 보이는 밤은 까만 하늘에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벚꽃이리라.
나는 ‘아이 눈에 저 꽃이 얼마나 아름다워 보이면 저렇게 신나는 목소리로 날 깨웠던 것일까?’ 라고 생각하며 꽃의 아름다움에 공감해 주었다.
"아니야. 아니야. 아까는 하얀 낮이었는데, 이젠 다 까맣잖아. 까매. 밤은 까맣잖아. 아빠, 밤이 이제 눈에 보여."
아! 밤은 어둠으로 그저 우리 눈을 가리는 줄로만 알았는데 밤은 새까만 어둠으로 치장하고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이었다.
나는 그동안 밤하늘 떠 있는 달의 밝음을 바라보며 감탄할 줄만 알았지 밤의 어둠을 바라보고 아름다워할 줄 몰랐다.
밤이 차려 놓은 어둠을 지우는 빛에 빠져 어둠의 빛깔을 눈치채지 못해 진정한 밤의 아름다움을 볼 줄 몰랐던 것이다.
마음과 눈이 맑은 아이들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어둠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안다.
앞으로 나는 아이들이 가리키고 생각하는 새로운 아름다움들을 바라보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아빠가, 그런 어른이 될 수 있을까?
사내기고 : 상하수도1부 이호준 차장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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